머니위키
주식, ETF, 부동산, 경제, 경영, 투자, 비트코인

밴더 파이낸싱으로 알아보는 AI 버블과 닷컴 버블의 평행이론

AI 버블, 정말 터질까요? 엔비디아의 기묘한 거래가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전조와 닮았습니다. '밴더 파이낸싱'의 위험성을 쉽게 분석합니다.

지금 전 세계는 AI와 반도체 열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에 나타났던 '기묘한 거래 패턴'이 오늘날 AI 산업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AI 기업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래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며, 만약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닷컴 버블을 뛰어넘는 충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AI 버블의 핵심 리스크로 떠오른 '밴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25년 전 닷컴 버블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알기 쉽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밴더 파이낸싱'이란 무엇인가요?

'밴더 파이낸싱(공급자 금융)'이라는 말이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고속도로 건설에 비유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1. A (고속도로 운영사): "고속도로(AI 서비스)를 깔면 떼돈을 벌 것 같은데, 당장 도로를 건설할 돈이 없네..."
  2. B (건설 자재 업체): "우리 자재(AI 칩)를 사주면 도로를 깔 수 있지! 우리가 일단 돈을 빌려줄게. 나중에 고속도로 통행료 받아서 갚아."
  3. A (운영사): "좋았어!" (B에게 빌린 돈으로 B의 자재를 구매)
  4. B (자재 업체): "자재 1,000억 원어치 판매 완료! 이번 분기 매출 대박!"

이 구조에서 B(자재 업체)는 당장 매출이 급증합니다. 하지만 이 매출은 실제 현금이 아니라 'A에게 받을 돈(매출 채권)'입니다. 만약 A(운영사)가 고속도로를 다 짓고도 돈을 못 벌어서 파산하면 어떻게 될까요? B(자재 업체)의 '매출'은 휴지 조각이 되고, 빌려준 돈도 모두 손실로 잡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밴더 파이낸싱'의 핵심입니다.

지금 AI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현재 AI 산업에서 이와 똑같은 구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 AI 서비스 개발사 (A): 오픈AI, xAI 등 (돈을 벌기 전)
  • AI 칩 제조사 (B): 엔비디아, AMD 등 (칩을 팔면 돈을 범)

AI 서비스 개발사들은 AI 모델을 훈련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AI 칩이 필요하지만, 아직 그만한 현금이 없습니다.

사례 1: 엔비디아와 오픈AI (그리고 네오 클라우드)

  • 엔비디아오픈AI에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합니다.
  • 오픈AI는 그 돈으로 엔비디아의 GPU(AI 칩)를 구매합니다.
  • 결과: 엔비디아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엔비디아는 심지어 '코어위브(CoreWeave)' 같은 신생 클라우드 업체(네오 클라우드)에도 막대한 투자를 합니다. 코어위브는 그 돈으로 엔비디아 GPU를 사서 클라우드 사업을 하죠. 심지어 엔비디아는 "만약 코어위브가 GPU 사용 고객을 못 구하면, 우리가 그 빈자리를 사용하고 돈을 내겠다"라는 파격적인 계약까지 맺었습니다.

사례 2: AMD와 오픈AI

  • 엔비디아를 추격해야 하는 AMD도 이 흐름에 동참합니다.
  • AMD오픈AI에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지원(투자)합니다.
  • 오픈AI는 그 대가로 AMD의 차세대 칩(MI450)을 대량으로 구매해 주기로 약속합니다.
  • 결과: AMD는 '오픈AI'라는 확실한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며 엔비디아를 견제할 발판을 마련합니다.

25년 전, 닷컴 버블은 어떻게 무너졌나

이 장면이 무서운 이유는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의 전조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지금의 AI였습니다.

  • 인터넷 스타트업 (A): "인터넷 망만 깔면 떼돈을 벌 거야!"
  • 통신 장비 업체 (B): 루슨트 테크놀로지, 시스코, 노텔 등

당시 통신 장비 업체(B)들은 인터넷 스타트업(A)들에게 자신들의 장비를 사도록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직접 대출해줬습니다. (밴더 파이낸싱)

  • 결과 (초반): 장비 업체들의 매출은 폭증하고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 결과 (붕괴): 하지만 스타트업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줄줄이 파산하자, 이 '가짜 매출'은 회수 불가능한 채권(손실)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 기업들의 최후

  • 루슨트 테크놀로지: 2001년 한 해에만 164억 달러(약 20조 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회계 조작 의혹에 휩싸인 뒤 결국 프랑스 기업에 인수되었습니다. (현재는 노키아에 흡수됨)
  • 시스코 시스템즈: 주가가 80% 이상 폭락했으며, 닷컴 버블 당시의 최고점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노텔: 캐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을 기록하며 사라졌습니다.

엔비디아는 왜 이런 위험한 도박을 할까?

엔비디아는 닷컴 버블의 교훈을 모르는 걸까요? 여기에는 더 큰 전략이 숨어있습니다.

  1. 확실한 수요처 확보: AI 칩은 너무 비싸서 아무나 살 수 없습니다. 엔비디아가 직접 돈을 대줘서라도 '오픈AI' 같은 확실한 구매자를 묶어두고, 차세대 칩(루빈)까지 장기 계약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2. 생태계 장악 (빅테크 견제):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은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칩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코어위브' 같은 자신들의 우군(네오 클라우드)을 직접 키워, 빅테크가 이탈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것입니다.
  3. 공급망 협상력 강화: "나는 오픈AI라는 거대 고객과 장기 계약이 되어 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TSMC나 SK하이닉스 같은 공급사들에게 더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습니다.

결론

이 거대한 자금의 순환 고리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한국을 방문해 "HBM 90만 장"이라는 천문학적인 물량을 요청한 것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이 '밴더 파이낸싱'의 핵심 공급망(밴더)으로 깊숙이 편입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엄청난 기회이지만, 동시에 닷컴 버블과 같은 시스템 리스크에 함께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 AI 산업은 '밴더 파이낸싱'이라는 거대한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것과 같습니다. 이 호랑이가 정말 하늘로 날아오를지, 아니면 25년 전처럼 모두를 태우고 절벽으로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투자자로서 우리는 이 화려한 파티를 즐기되, 2000년의 쓰라린 교훈을 잊지 말고, 기업들의 '매출'이 진짜 현금인지, 아니면 돌려받지 못할 '채권'인지 냉철하게 지켜봐야 할 때입니다.


AI-Bubble-and-Dot-Com-Bubble

댓글 쓰기